구본웅
친구의 초상(李箱)
1930년 캔버스에 유화 65×53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호는 서산(西山).
아카데미즘으로 고착된 1930년대 화단의 일상성을 거부하고 매우 개성적인 표현세계를 개척한 인물로 '한국 야수파 화가의 독보적인 존재'이다.어려서 척추를 다쳐 꼽추가 된 그는 화가의 길이 곧 숙명이라고 여겨 18세에 고려미술연구회에 입회, 이종우에게 서양화를 배웠고, 듬해 YMCA 청년학관 미술 과에서 김복진에게 조각을 배웠다.
1921년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 부에서 <머리습작>을품해 특선에 뽑혔고, 22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가와바타(川端) 미술학교를 거쳐 일본대학 전문부 미학과를 다녔다.
1930년 자유로운 화풍을 펼치던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했고, 1933년 졸업 후 귀국하여 시인 이상(李箱), 소설가 김유정 등과 친분을 두텁게 하며 문화의 불모상태에 있던 일제 강점기 모더니즘 미학의 토착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당시 출세의 지름길인 선전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관전(官展)에 대해서도 '선장 없는 기선'이라고 혹평했다. 또한 예리한 비평적 안목으로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의 미술과 문화적 활동은 일제 강점기 한국미술의 원점과 한계를 알려주는 현주소이기도 했다.
1934년 목일회(뒤에 목시회)를, 1935년 백만회를 창립해 왕성한 전위미술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대 국내화단에서는 구본웅·이중섭·김환기·유영국이 야수파·표현주의·입체파·추상미술 등 서구의 전위적 화풍을 소개했다. 이들 제2세대 화가들의 등장은 도쿄 미술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아카데미 화단에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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