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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미인도(美人圖)

주문을걸다 2008. 12. 27. 12:36

 

  신윤복   申潤福    1758∼?(영조 34∼?)       
  조선 후기 화가. 자는 입부(笠父), 호는 혜원(蕙園). 본관은 고령(高靈).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으로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  

 


 

혜원 신윤복(1758~?)과 단원 김홍도(1745~1806?)는 13살 차이이다

김홍도(金弘道) ·김득신(金得臣)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된다.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남종화풍(南宗畵風)의 산수(山水)와 영모(翎毛) 등에도 뛰어났다.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도화서(圖畵署)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지며,

신윤복은 역시 화원화가였던 아버지 신한평이 75세까지 화원에 출사하는 바람에 50대 초반까지는 부친과 상피(相避)하기 위해 화원의 공식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신윤복은 상류사회의 자제들과 어울리며 풍류ㆍ생활상을 그리는 데 열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해진 작품에 남긴 간기(干紀)로 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처네를 쓴 여인》에 있는 1829년이 가장 하한인 바 대체로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화원이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해도 직업화가로, 당시 수요에 따른 많은 풍속화를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으로는 국보 제135호로 지정한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이 전한다.

모두 30여 점으로 이루어진 이 화첩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 외국에도 잘 알려진 그림이다.
사회 각층을 망라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달리 도회지의 한량과 기녀 등 남녀 사이의 은은한 정을

 잘 나타낸 그림들로 동시대의 애정과 풍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탄금(彈琴)》 등 6점으로 된 화첩 또한 명품(名品)이다. 아울러 초상기법으로 그린 《미인도(美人圖)》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 걸작으로 손꼽힌다.

 


 

 

                 

《미인도(美人圖)》
세로 114.2㎝, 가로 45.7㎝.
비단 위에 채색을 하였으며,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